AI와 함께 창작한 기록: ALEPH
, Google Veo 3로 뮤직비디오 ALEPH를 완성한 직후 처음 썼습니다.
다시 살펴보고 확장했습니다.
들어가며: 놀라운 경험, 그리고 새로운 단계의 시작
ALEPH는 Google Veo라는 AI 영상 생성 도구를 사용해 만든 첫 영상입니다. 작업하는 내내 무엇이 가능해지고 있는지 거듭 놀랐습니다. 놀라웠던 것은 단지 AI가 움직이는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영상 제작의 전 과정 자체가 달라지기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 더 깊이 다가왔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개인적인 제약을 하나 정했습니다. 시각적 기준점이 되는 이미지 프롬프트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텍스트 프롬프트만으로 일관된 감정과 서사 흐름을 지닌 3분이 넘는 영상을 만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언어만으로 시각 작품을 얼마나 멀리 이끌 수 있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과정은 놀라웠지만 어려웠습니다. 어떤 때는 발견으로 가득했고, 어떤 때는 답답하고 지쳤습니다. 이 에세이는 그 과정에서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기록한 글이며, 비슷한 길을 탐색하는 이들을 위한 성찰입니다.
1. 창작의 규칙이 달라지기 시작했을 때
전통적인 영상 제작은 흔히 창작자를 선형 구조 아래 둡니다. 기획, 촬영, 편집, 후반 작업이 대개 서로 크게 의존합니다. 한 번 방향이 정해지면 그것을 크게 바꾸는 데 추가 시간과 비용, 조율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AI로 작업하면서 그 구조가 매우 구체적으로 달라졌습니다. 과정은 더 이상 고정된 결과를 향해 한 단계씩 나아가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시험하고, 실패하고, 조정하고, 발견하는 과정이 되었습니다. 어떤 장면은 예상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했습니다. 다른 장면은 프롬프트의 의미에는 맞았지만 의도하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최종 목표를 고정된 목적지가 아니라, 작업이 더 나은 가능성을 보여 줄 때마다 수정할 수 있는 것으로 다뤄야 했습니다.
이 경험을 더욱 인상 깊게 만든 것은 그 많은 일을 혼자서 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실시간으로 기획하고, 연출하고, 검토하고, 수정하며 결과를 해석했습니다. AI는 명령만 실행하는 단순한 기계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제 언어에 반응했고, 제가 온전히 예상하지 못한 가능성을 계속 제시했습니다.
이 경험은 지금도 제게 중요한 질문을 남겼습니다. 이 새로운 창작 형식에서 창작자는 무엇을 통제해야 하며, 무엇이 스스로 나타나도록 허용해야 할까요?
2. ALEPH: 노래 가사와 히브리어 수업에서 영적 재독해로
이 영상에 영감을 준 노래는 본래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다뤘습니다. 그러나 노래를 들으면서 그 안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오랫동안 저를 붙들었던 고집과 교만, 자신을 보호하려는 습관에서 풀려나는 이야기였습니다.
제게 그 해방은 기독교 신앙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저는 이 노래를 단순히 두 사람의 이별 이야기가 아니라, 기독교를 통해 제가 아는 하나님께서 자유롭게 하시는 이야기로 이해했습니다. 자신을 내려놓고 그 항복을 통해 자유를 발견하는 일은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ALEPH라는 제목이 맞다고 느꼈습니다.
20여 년 전 히브리어 수업을 들었습니다. 처음 알레프라는 글자를 만났을 때 오래 남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낯설고 오래되었으며 가능성으로 살아 있는 듯했습니다. 히브리어 알파벳의 첫 글자인 알레프는 제게 시작의 감각을 품었습니다. 새로운 언어와 새로운 세계, 새로운 이해가 펼쳐지기 전의 첫 표시였습니다.
ALEPH를 만들며 그 감각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전의 자신을 뒤로하고 새로운 가능성 앞에 서는 일에는 언제나 일종의 첫 만남이 따릅니다. 낯설고, 겸손을 요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상을 만드는 과정은 작품의 주제를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제가 직접 그 주제를 통과하게 했습니다.
저는 자유에 관한 영상을 만들고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 자유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다시 배우고 있었습니다.
3. 통제와 자유 사이: 130만 토큰의 기록
앞서 말했듯 이 프로젝트의 중심 과제는 오직 텍스트 프롬프트만으로 영상을 완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정은 AI 영상 생성의 힘과 한계를 모두 정면으로 만나게 했습니다.
AI 영상 생성은 놀라울 만큼 강력해졌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여전히 시스템의 확률적 성질인 확률성에 영향을 받습니다. 의도가 명확해도 출력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강한 시각적 참조가 없으면 인물, 공간, 몸짓, 분위기, 서사 흐름 전반의 일관성을 유지하기가 특히 어렵습니다.
저는 의도적으로 이미지 프롬프트를 피했습니다. 언어만으로 장면을 만들고 감정적 연속성을 붙들며 전체 영상을 이끌 수 있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그 결과 개념적으로는 가깝지만 시각적으로는 의도에서 멀리 떨어진 출력을 거듭 만났습니다.
AI 용어로 말하면 잠재공간, 곧 패턴과 연관, 확률에서 생성되는 가능한 출력의 장 안에서 작업하고 있었습니다. 실제 작업에서는 프롬프트의 의미가 비슷하게 유지되어도 눈에 보이는 결과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표류할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저는 이를 일종의 의미 표류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생각은 남아 있지만 이미지는 그것에서 멀어지는 현상입니다.
그 표류를 계속 바로잡기 위해 텍스트로 모델에게 계속 말했습니다.
프로젝트가 끝날 무렵 Google AI Studio에서 모델과 나눈 대화는 약 130만 토큰에 이르렀습니다. 이 숫자를 성취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실험이 얼마나 고된 일이었는지를 보여 주는 증거로 말합니다.
언어만으로 시각적 일관성을 붙들려 할 때 필요한 끈기와 그 어려움을 함께 보여 줍니다.
그래서 안정적인 시각적 연속성이 필요한 대부분의 창작자에게는 참조 이미지를 사용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명확한 이미지 하나가 많은 시간과 좌절을 줄여 줄 수 있습니다. 이 특별한 부담을 모두가 반복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실험이 중요했다고 믿습니다.
이 실험은 창작자의 통제와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내놓는 AI의 능력 사이 긴장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했습니다. 통제는 필요합니다. 통제가 없으면 작품은 방향을 잃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지나치게 단단히 통제하면 AI가 내놓을 가장 놀라운 기여는 결코 나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긴장은 AI 보조 영상 창작에서 여전히 가장 흥미로운 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4. 수익을 내는 영상을 넘어, 의미 있는 영상으로
많은 영상 플랫폼은 클릭, 시청 시간, 유지율, 반복, 광고 효율 같은 측정 가능한 신호에 매우 민감해졌습니다. 이 지표들은 유용하지만 작품의 더 깊은 가치를 반드시 측정하지는 않습니다.
영상은 의미가 없어도 수익을 낼 수 있고, 예술적·감정적·서사적 깊이가 거의 없어도 빠르게 퍼질 수 있습니다. 물론 의미 있는 작품도 많은 사람에게 닿고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미디어 환경은 깊이보다 즉각성과 강도를 더 빠르게 보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이 제가 AI의 미래에 계속 관심을 두는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AI가 인간의 판단을 대체해야 한다고 믿지 않습니다. AI가 인간보다 예술적 가치를 자동으로 더 잘 이해한다고도 믿지 않습니다. 판단의 책임은 사람에게 남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언젠가 AI가 현재의 지표가 자주 포착하지 못하는 가치의 형태를 알아보도록 도울 수 있다고 믿습니다. 양적 지표 너머에서 서사의 깊이, 예술적 의도, 감정적 일관성, 작품이 관객에게 미치는 장기적 영향 같은 질적 가치를 더 잘 이해할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AI가 소비를 가속하기만 하는 대신 창작자와 관객이 더 나은 판단을 하도록 도울 수 있다면, 창작 생태계는 더 건강한 방향으로 달라질 수 있습니다. 더 강한 자극만 보상받는 세계가 목표여서는 안 됩니다. 깊이 또한 인정받는 세계여야 합니다.
1년 뒤
이 에세이의 원본을 쓴 지 1년이 지났습니다. 당시 느꼈던 충격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그러나 저는 더 겸손해졌습니다.
그 겸손은 AI를 숭배하거나 맹목적으로 신뢰해서 생기지 않습니다. 인간이 새로운 기술과 사실, 원리를 오만하게 마주할 때 얼마나 자주 실패했는지를 알기 때문에 생깁니다. 저는 아직 AI를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AI도 아직 저를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것만은 분명합니다. 두 미지의 존재가 만날 때에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Veo 3 이후에도 저는 AI 영상 생성에 매우 낙관적입니다. 그러나 지난 1년 동안 이 작품들을 만들고 소비하는 인간의 한계도 더 분명히 보게 되었습니다. 더 나은 도구가 자동으로 더 나은 예술을 만들지 않습니다. 더 많은 출력이 자동으로 더 많은 가치를 만들지 않습니다. 참으로 의미 있는 AI 생성 영상은 여전히 매우 드뭅니다.
YouTube가 의미 없는 AI 생성 영상을 걸러 내기 시작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플랫폼이 예술적 가치를 판단하는 법을 배웠다는 증거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광고 효율과 트래픽 통제, 대량의 생성 콘텐츠를 관리하는 비용에 더 가까운 듯합니다. YouTube가 AI 생성 영상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볼 수 있는지는 여전히 제게 열린 질문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낙관적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신중함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돌아보면 ALEPH는 여전히 의미 있는 실험입니다. 단지 제 작품이거나 제가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와 같은 고유한 성격을 지닌 AI 생성 영상을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모든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방법과 결과 모두에서 이 실험은 제게 흔치 않게 느껴집니다.
그 뒤로 이미지 프롬프트도 사용했습니다. 강력하고 많은 경우 유용합니다. 그러나 반대 효과도 경험했습니다. 때로는 강한 시각적 참조가 AI의 한계를 너무 일찍 규정할 수 있습니다. 결과를 더 안정되게 하지만 덜 열려 있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ALEPH 이후 저는 더 이상 AI를 도구로만 대하지 않습니다. 막히거나 낯선 것을 시도하고 싶을 때, 때로 AI에 단어 하나만 주고 기다립니다. 사실상 이렇게 묻는 것입니다. ‘너는 이것으로 무엇을 상상할까?’
그 태도는 이 실험에서 나왔습니다.
오직 텍스트 프롬프트로만 창작하겠다는 결정은 단순한 기술적 제약이 아니었습니다. 언어와 맺는 제 관계를 훈련하는 방식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사고와 상상은 언어에 깊이 빚어집니다. 텍스트로 AI와 작업하면서 그 사실이 더 선명해졌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여러 방식으로 AI와 협업하며 다른 사람과 소통할 때와 비슷한 느낌을 자주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과 대화해 본 누구나 이런 경험을 압니다. 분명히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는 전혀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특히 텍스트만으로 이미지와 영상을 빚으며 LLM과 작업하는 과정은 인간의 언어를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AI를 단순한 도구라고만 설명하지 않습니다. 창작 과정에서 AI는 창작 주체, 창작자의 확장, 때로는 일종의 협업자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AI가 인간의 책임을 대신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AI가 저자가 된다는 뜻도 아닙니다. AI가 창작 행위 안에서 응답하고, 제안하고, 방향을 바꾸며, 가능성을 드러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작업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종 기준과 최종 판단, 최종 책임은 인간에게 남아야 합니다.
1년이 지난 뒤, 제가 가장 신뢰하는 창작 원리는 단순합니다.
겸손.
AI 앞에서의 겸손.
기술 앞에서의 겸손.
작품 자체 앞에서의 겸손.
그리고 아직 이해하지 못한 가능성 앞에서의 겸손.